利用者:Taisai429/sand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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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時北朝鮮軍作戦局長兪成哲「私の証言」
[編集]- 6ㆍ25 당시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씨 부부 서울에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2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3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4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5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6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7
- 6·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8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1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3
- 6·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4
- 6·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5
- 6·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6
-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7
- 6·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8
- 6·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9·끝
- 베일속 「김일성과거」 파헤쳐/「유성철 나의 증언」연재를 끝내고
「永遠なる記念碑」
[編集]- 영원한 기념비(1)—《8.15》광복의 의미
- 영원한 기념비(2)—쏘련군과 함께 동북에 진출한 항일련군
- 영원한 기념비(3)—조선의용군의 동북진출
- 영원한 기념비(4)— 오가황 조선의용군군인대회
- 영원한 기념비(5)—남만에서의 조선의용군 1지대
- 영원한 기념비(6)—북만에서의 조선의용군 3지대
- 영원한 기념비(7)—광복후 길림지역
- 영원한 기념비(8)—동만에 도착한 의용군 5지대
- 영원한 기념비(9)—동만 토비숙청 상편
- 영원한 기념비(10)—동만 토비숙청 하편
- 영원한 기념비(11)—북만과 남만에서
- 영원한 기념비(12)—장춘쟁탈전 상편
- 영원한 기념비(13)—장춘쟁탈전 하편
- 영원한 기념비(14)—전략적 후퇴
- 영원한 기념비(15)—적과의 대치
- 영원한 기념비(16)—북만 토비숙청
- 영원한 기념비(17)—화전군정대학과 길동군정대학
- 영원한 기념비(18)—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
- 영원한 기념비(19)—토지개혁 상편
- 영원한 기념비(20)—토지개혁 하편
- 영원한 기념비(21)—참군열조와 전선지원
- 영원한 기념비(22)—남만에서의 투쟁
- 영원한 기념비(23)—림강으로
- 영원한 기념비(24)—림강보위전
- 영원한 기념비(25)—화수림자전투
- 영원한 기념비(26)—폭파영웅 조성두
- 영원한 기념비(27)—사간방전투
- 영원한 기념비(28)—확고한 동만근거지
- 영원한 기념비(29)—산성진과 서안 해방전투에서
- 영원한 기념비(30)—전투영웅 박국제와 전언식
- 영원한 기념비(31)—사평공격전
- 영원한 기념비(32)—길림주변의 전투
- 영원한 기념비(33)—덕혜해방전투
- 영원한 기념비(34)—장당의 백룡산전투
- 영원한 기념비(35)—피로물든 황화산전투
- 영원한 기념비(36)—전투영웅 강창록
- 영원한 기념비(37)—길림주변 철가자산전투
- 영원힌 기념비(38)—이도하자와 동장춘 습격전
- 영원한 기념비(39)—용감무쌍한 김성범련
- 영원한 기념비(40)—고점자전오가자 전투(상편)
- 영원한 기념비(41)—고점자 전오가자전투(중편)
- 영원한 기념비(42) 고점자—전오가자 혈전(하편)
- 영원한 기념비(43)—개원해방전투
- 영원한 기념비(44)—사평해방의 전투영웅 김동원렬사
- 영원한 기념비(45)—동북대반격의 승리
- 영원한 기념비(46)—자아희생적인 지달만영웅
- 영원한 기념비(47)-대결전을 앞두고
- 영원한 기념비(48) 장춘포위
- 영원한 기념비(49)—《7.6》전투(상편)
- 영원한 기념비(50)— 《7.6》전투(하편)
- 영원한 기념비(51)— 금주로 진격
- 영원한 기념비(52)—의현 해방전투
- 영원한 기념비(53)— 배수지전투
- 영원한 기념비(54)— 금주공격전
- 영원한 기념비(55)—장춘해방
- 영원한 기념비(56)—흑산대호산 저지전(상편)
- 영원한 기념비(57)—흑산저지전(중편)
- 영원한 기념비(58)—흑산-대호산 저지전(하편)
- 영원한 기념비(59)—호가워펑 《참수행동》
- 영원한 기념비(60)—10종대의 반격
- 영원한 기념비(61)—흑산렬사릉원과 료심전역기념관
- 영원한 기념비(62)—심양해방
- 영원한 기념비(63)—동북해방과 심양위수
- 영원한 기념비(64)—북평 남원비행장 전투
- 영원한 기념비(65)—천진해방전투
- 영원한 기념비(66)—북평해방
- 영원한 기념비(67)—태원해방에서 위력 떨친 포병부대
- 영원한 기념비(68)—장강도하의 단풍전투
- 영원한 기념비(69)—단풍현 전적지 답사
- 영원한 기념비(70)-남창 위수임무
- 영원한 기념비(71)—남창에서 맞은 공화국 창건
- 영원한 기념비(72)—형보전역
- 영원한 기념비(73)—대용전투
- 영원한 기념비(74)—중경해방과 상서 토비숙청
- 영원한 기념비(75)—해남도 해방①
- 영원한 기념비(76)—해남도해방②
- 영원한 기념비(77)—해남도해방③
- 영원한 기념비(78)—해남도 해방④
- 영원한 기념비(마지막회)—빛나는 공적
「望郷:中立国行きを志願した『反共捕虜』の手記」
[編集]-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一) 濟州島에서「브라질」까지 피맺힌 旅路 滿洲를 헤매던 憂國失鄕民의 後裔 살 길 없어 人民軍에 짓궂은 運命… 日帝때는 憲兵 노릇 [肖]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 通譯官採用에 自敍傳까지 써 없는 嫌疑를 뒤집어 쓸까 걱정도 過去캐는 審問은 酷毒 [寫] (題字… 金相筆)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 蘇軍將校는 망나니 지독한「다와이根性」집도 헐어 팔고 蘇聯 出身은 덮어놓고 優待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四) 淺薄한 辱說로 野蠻性 드러내 韓人將校는 眼中에도 없는 듯 抗辯하자 拳銃빼들고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五) 기틀 잡히자 肅軍 蘇軍出身도 눈 밖에 나면 集團農場으로「過去」드러나면 處斷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六) 한 週에 두 번 指名討論 答辯못하면 叱責「스탈린」式 精神武裝해야 된다고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七) 49年 여름 南侵態勢完備 中共軍 속의 韓人潛入 傀儡軍服裝 입혀 各地에 配置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八) 工兵部隊도 勢力다툼 몇 번 쫓겨날 고비 傀儡軍은 急速度로 늘어가고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九) 組織化되는 南侵準備 部隊別訓練競爭 成績 나쁘면「集團不名譽」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 文字그대로 傀儡軍 生活方法까지도 蘇聯式 49年 겨울 南侵위한 攻擊練習끝나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一) 50年初 38線에 集結 攻擊路打開訓練도 하고 將校間엔 暗暗裡 南侵攻勢說돌아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二) 들이닥친 蘇船舶 各種砲門은 南쪽으로 向해 있고 女子만 찾는 蘇軍將校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三) 먹자판인 蘇聯軍 平壤선 僞裝平和 統一만 떠들고「南侵武器」는 다 到着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四) 南侵準備를 完備 地形·橋梁에 대해 徹底히 익히고 傀儡軍團도 全面改編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五) 南侵 바로 直前에 極秘密裡大戰鬪訓練 뒤숭숭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寫]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六) 金化南方에 布陣 갑자기 平壤歸還命令 不吉한 豫感이 머리를 스쳐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七) 蘇語로 된 南侵計劃書 23日까지 戰鬪準備하라고 25日 새벽 一齊히 38線 全域侵攻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八) 蘇顧問들 私服입고 南下 戰勢 不利해지자 發惡 脫出할 機會왔다고 굳은 決心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十九) 마침내「歸順」成功 捕虜收容所長에 뽑혀 惡質的인 빨갱이 潛入에 골치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 激增一路의 捕虜 釜山에 移動·分散收容 美情報機關서 每日個別審査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一) 戰犯摘發調委를 組織 將校數名도 包攝 CID 要請 받고 極秘裡에 活動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二) 中共軍介入 消息듣자 惡質捕虜들 反抗 管理 當局의 强壓策도 逆利用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三) 빨갱이 頭目煽動으로 公公然反抗行爲 右翼捕虜들에도 커다란 威脅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四) 秘密組織體 마련 各種赤色 노래도 불러 收容所엔 밤마다 險惡한 空氣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五) 中立國行自願한 反共捕虜의 手記 지금까지의 줄거리//收容所서 트집도 갖가지로 所謂「反動」排斥陰謀도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六) 休戰說 떠돌자 氣勝떨기 시작 赤色工作 强化한 北傀走狗들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七)「붉은 옷 反對」暴動 赤色變節者의 演說이 可觀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八) 脫走 위한 秘密「턴넬」마련 發覺된 走狗들 自家團束에 血眼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二十九) 造作된 엉터리「뉴스」눈가림「斷食鬪爭」벌리기도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反動」殺害를 恣行 用便 오랜 것까지 批判의 對象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一) 金日成과 直接內通「편지報告大會」後의 空氣險惡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二) 運命 건 自己批判會 走狗들 모여 낱낱이 캐어물어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三) 눈치 보며「自我批判」「國軍」呼稱에도 非難의 화살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四) 批判이 아니라 拷問 차례는 드디어 나에게 닥쳐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五) 率直히 하라고 暴行 恐喝로 强要되는「自我批判」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六) 險惡해진 批判會場 强要와 拒否로 한때 興奮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七) 아슬아슬했던 고비 地下組織體吐說하고야 넘겨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八) 秘密裡에 暴動準備「드람」통 뜯어 槍과 칼 만들고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三十九) 虎口서 救援됐으나… 새로 간 收容所서도 暴力 橫行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四十) 行悖 갈수록 尤甚 反共靑年團에 主導權爭奪戰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四十一) 놓쳐버린 釋放機會 다른 收容所선 풀려 나왔건만
- 望鄕 中立國行을 自願한「反共捕虜」의 手記 (四十二) 中立國「브라질」로 갖은 苦楚겪으며 드디어 實現(朱榮福)
朝鮮独立同盟・朝鮮義勇軍幹部一覧
[編集]第一次入北者(1945年)
[編集]- 金枓奉
- 崔昌益
- 韓斌
- 方禹鏞
- 高峯起
- 金民山
- 陳班秀
- 朴茂
- 洪淳官
- 何仰天
- 張桭光
- 許貞淑
- 金英淑
- 張秀蓮
- 武亭
- 朴孝三
- 金昌漫
- 李春岩
- 朱春吉
- 柳新
- 金世光
- 孫達
- 楊界
- 李林
- 金漢中
- 李志強
- 李鉄重
- 張重光
- 張志民
- 張志福
- 朱革
- 陳国華
- 崔鳳緑
- 崔英
- 河振東
- 王蓮
- 金哲原
- 馮中天
- 張重振
第二次入北者(1946年)
[編集]- 朴一禹
- 李益成
- 李権武
- 趙烈光
- 金雄
- 朱然
- 李相朝
- 金演
- 李根山
- 孔昊
- 朴勲日
- 崔明
- 韓璟
- 金沢
- 張平山
- 李徳武
- 李大成
- 金鑫
- 金興
- 李明善
- 崔啓元
- 李東浩
- 尹致平
- 具在洙
- 金伍鎮
- 金守漫
- 柳元川
- 金鐘元
- 金炳権
- 金炳憲
- 李元栄
- 趙炳龍
- 蔡国潘
- 李明
- 李維民
- 王子仁
部隊引率入北者(1949年 - 1950年)
[編集]- 宋春石
- 李雄杓
- 車均燮
- 金基原
- 金学龍
- 方虎山
- 盧喆龍
- 洪林
- 沈青
- 朴民
- 表求瑞
- 趙世杰
- 韓日海
- 黄石
- 権淳益
- 金厚進
- 崔進作
- 張勲
- 金昌徳
- 張福
- 朴松波
- 朴正徳
- 金鳳文
- 王輝
- 尹明煥
- 全宇
- 池炳学
- 崔亜立
- 崔鳳俊
- 崔学勲
- 李原城
- 黄東華
- 張教徳
- 宋徳万
- 趙寛
- 玄波
- 李芳南
- 金昌俊
- 黄文錫
- 石光鎮
- 申学均
- 朴光欽
- 李賓
- 金里黙
- 洪允基
- 李青原
- 洪天波
- 李佳興
- 朴正華
- 許昌福
- 金成春
入北後中国帰国者(1951年 - 1956年)
[編集]- 尹公欽
- 徐輝
- 金剛
- 鄭律成
- 魯民
- 黄載然
- 韓青
- 趙小卿
- 張礼信
- 桂仲秀
- 朱紅星
- 金世民
- 崔明世
- 李成進
- 鄭吉雲
中国残留者
[編集]- 朱徳海
- 文正一
- 崔采
- 崔正武
- 崔東光
- 李華林
- 尹在徳
- 金顕大
- 崔剛
- 李渉
- 柳東浩
- 高英龍
- 李旭成
- 金学哲
参考資料
[編集]- 김중생『조선의용군의 밀입북과 6.25전쟁』명지출판사、2000年、277-279頁。ISBN 8931107447。
朝鮮人民軍戦闘序列(1950年6月25日)
[編集]前線司令部 1950年7月5日創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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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軍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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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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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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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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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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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3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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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5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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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05戦車旅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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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警備第3旅団 のち第9師団に改編昇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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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団直轄部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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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軍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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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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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5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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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2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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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警備第1旅団 のち第8師団に改編昇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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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団直轄部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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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略予備 | 第10師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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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警備第7旅団 のち第7師団に改編昇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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参考資料
[編集]- (PDF) 6⋅25전쟁사 1 전쟁의 배경과 원인 (6.25戦争史 第1巻 戦争の背景と原因), 大韓民国国防部軍史編纂研究所, (2004-6-23) 2018年11月17日閲覧。
- (PDF) 6⋅25전쟁사 2 북한의 전면남침과 초기 방어전투 (6.25戦争史 第2巻 北韓の全面南侵と初期防御戦闘), 大韓民国国防部軍史編纂研究所, (2005-12-12) 2018年11月9日閲覧。
- (PDF) 6⋅25전쟁사 5 낙동강선 방어작전 (6.25戦争史 第5巻 洛東江線 防御作戦), 大韓民国国防部軍史編纂研究所, (2008-6-30) 2018年11月9日閲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