黄海線
黄海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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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種表記 | |
チョソングル: | 황해선 |
漢字: | 黃海線 |
発音: | ファンヘソン |
日本語読み: | こうかいせん |
英語: | Hwanghae Line |
黄海線(ファンへせん、こうかいせん)は、日本統治時代の朝鮮の黄海道において朝鮮鉄道によって建設された狭軌鉄道の総称である[1]。 1944年4月1日に朝鮮総督府によって買収され、同時に土海線、甕津線、長淵線、沙海線、下聖線、内土線、鼎島線などに路線名が分離と変更された [2]。
現在の路線は全部標準軌に改軌され、黄海青年線、殷栗線の一部区間、長淵線、甕津線、白川線となっている。改軌の過程で一部分が廃止または移設された。
概要
[編集]黄海線は朝鮮鉄道局(鮮局、鉄道省管轄)京義本線の京城から平壌のほぼ中間地点に位置する土城(現在の開豊)で分岐して北緯38度線付近に沿って西海岸の海州(現在の海州青年)に至り、ここから北上して京義線沙里院(現在の沙里院青年)を結ぶのが155㎞ほどの本線(他は枝分かれした支線)で、762㎜軌間でありながら当時の内地の国鉄地方幹線並みの設備や規模があり、最高70㎞/hの快速・急行列車や、石炭や鉱石を搭載した重量貨物列車が運行されていた[3]。
また、朝鮮鉄道の762㎜軌間の路線では、810形(1Dテンダー機)が1929年に咸北線に導入されるまではタンク機ばかりを使用していたため、短い区間で給炭水設備を配置しており、このためテンダー機関車が導入されてからも長距離走行を考慮したテンダーをつける必要がなく、固定2軸の小ぶりなものを使用していた[4]。
沿革
[編集]- 1919年5月20日 - 上海(三江駅) - 石灘 - 内土間が三菱製鉄所属軽便鉄道として開通。[5]
- 1920年4月21日 - 上海 - 内土間を西鮮殖産鉄道株式会社が引受。[6]
- 1920年12月21日 - 砂里院 - 上海 - 載寧間が西鮮殖産鉄道株式会社線として開通。[7]
- 1921年11月16日 - 載寧 - 信川間が西鮮殖産鉄道株式会社線として開通。[8]
- 1924年9月1日 - 石灘 - 未力間が朝鮮鉄道所属黄海線として開通。[9]
- 1925年9月1日 - 未力 - 新院 - 下聖間開通。
- 1929年11月1日 - 信川 - 水橋間開通。
- 1929年12月21日 - 新院 - 鶴峴間開通。
- 1930年12月11日 - 鶴峴 - 東海州間開通。[10]
- 1931年12月21日 - 東海州 - 延安、東海州 - 龍塘浦(海州港駅)間開通。[11]
- 1932年9月1日 - 延安 - 土城間開通。
- 1933年7月1日 - 東海州 - 海州間開通。
- 1934年5月11日 - 西邊駅(東浦駅)開業。[12]
- 1936年12月11日 - 海州 - 翠野間開通。
- 1937年1月21日 - 水橋 - 長淵間開通。
- 1937年5月10日 - 東浦 - 鼎島間開通。[13]
- 1937年5月19日 - 翠野 - 甕津間開通。[14]
- 1944年4月1日 - 各路線は全部国有化され、長淵線、砂海線、内土線、下聖線、土海線、甕津線、鼎島線に分離された。
- 1944年10月1日 - 黄海本線の開通によって既存の下聖駅は'旧下聖駅'に駅名変更。[15]
駅一覧
[編集]以下の駅一覧は1944年4月1日を基準とする。[2]
長淵線(沙里院駅 - 長淵駅)
[編集]駅名 | 営業距離 (km) |
接続路線 | 所在地 (1944年当時) |
備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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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里院(사리원) | 0.0 | 京義線(平釜線) | 黄海道 | 鳳山郡 | |
西沙里院(서사리원) | 1.5 | ||||
媚谷(미곡) | 3.6 | ||||
西鐘(서종) | 8.1 | ||||
三江(삼강) | 11.9 | 沙海線 | 載寧郡 | 旧駅名: 上海駅 | |
金山(금산) | 16.0 | ||||
載寧(재령) | 21.5 | ||||
白石(백석) | 25.0 | 信川郡 | |||
倉村(창촌) | 29.0 | ||||
信川温泉(신천온천) | 32.4 | ||||
信川(신천) | 35.1 | ||||
黃海龍門(황해룡문) | 41.2 | 旧駅名: 龍門駅 | |||
文化(문화) | 46.1 | ||||
三泉温泉(삼천온천) | 51.7 | 旧駅名: 三泉駅 | |||
弓興(궁흥) | 55.2 | ||||
野村(야촌) | 58.4 | 松禾郡 | |||
水橋(수교) | 64.1 | ||||
松禾温泉(송화온천) | 68.8 | ||||
楽山(낙산) | 74.4 | 長淵郡 | |||
楽道(낙도) | 77.8 | ||||
長淵(장연) | 81.9 |
- 載寧-水橋間は現在殷栗線の一部区間である。
沙海線(三江駅 - 海洲港駅)
[編集]駅名 | 営業距離 (km) |
接続路線 | 所在地 (1944年当時) |
備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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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江(삼강) | 0.0 | 長淵線(殷栗線) | 黄海道 | 載寧郡 | 旧駅名: 上海駅 |
広灘(광탄) | 6.0 | ||||
石灘(석탄) | 10.8 | ||||
花山(화산) | 12.9 | 内土線 | |||
長寿山(장수산) | 16.2 | ||||
未力(미력) | 20.9 | ||||
新院(신원) | 30.6 | 下聖線 | |||
塩灘(염탄) | 37.5 | ||||
新酒幕(신주막) | 45.8 | 碧城郡 | |||
鶴峴(학현) | 52.6 | ||||
東海州(동해주) | 59.0 | 土海線 | 海州市 | ||
青陽(청양) | 62.1 | 1937年以降新設 | |||
東浦(동포) | 65.1 | 鼎島線 | |||
海洲港(해주항) | 66.5 | 1937年度の営業距離を適用 |
内土線(花山駅 - 内土駅)
[編集]駅名 | 営業距離 (km) |
接続路線 | 所在地 (1944年当時) |
---|---|---|---|
花山(화산) | 0.0 | 沙海線 | 黄海道 載寧郡 |
内土(내토) | 2.1 |
下聖線(新院駅 - 旧下聖駅)
[編集]駅名 | 営業距離 (km) |
接続路線 | 所在地 (1944年当時) |
備考 |
---|---|---|---|---|
新院(신원) | 0.0 | 沙海線 | 黄海道 載寧郡 | |
新徳(신덕) | 3.5 | 1935年8月11日開業[16] | ||
旧下聖(구하성) | 5.5 |
土海線(土城駅 - 海州駅)
[編集]駅名 | 営業距離 (km) |
接続路線 | 所在地 (1944年当時) | |
---|---|---|---|---|
土城(토성) | 0.0 | 京義線(平釜線) | 京畿道 開豊郡 | |
礼成江(예성강) | 7.0 | |||
星湖(성호) | 12.3 | 黄海道 | 延白郡 | |
白川温泉(배천온천) | 17.3 | |||
紅峴(홍현) | 21.0 | |||
無仇(무구) | 24.6 | |||
延安温泉(연안온천) | 28.7 | |||
延安(연안) | 34.2 | |||
鳳西(봉서) | 39.9 | |||
楓川(풍천) | 45.6 | |||
天台(천태) | 50.6 | |||
深桂(심계) | 55.3 | |||
青丹(청단) | 58.8 | 碧城郡 | ||
来城(내성) | 63.0 | |||
泉決(천결) | 67.9 | |||
迎陽(영양) | 74.5 | |||
東海州(동해주) | 79.4 | 沙海線 | 海州府 | |
海州(해주) | 81.7 | 甕津線 |
甕津線(海州駅 - 甕津駅)
[編集]- →詳細は「甕津線」を参照
鼎島線(東浦駅 - 鼎島駅)
[編集]- →詳細は「鼎島線」を参照
関連文学作品
[編集]小説家 李箱は短編〈지팡이 역사〉で黄海線の機関車を次のように描写した。[18]
「 |
대체로 이 황해선이라는 철도의 '레일' 폭은 너무 좁아서 똑 '트럭 레일' 폭만 한 것이 참 앙증스럽습니다. 그리로 굴러다니는 기차 그 기차를 끌고 달리는 기관차야말로 가엾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이 치우면 사람이 다칠는지 기관차가 다칠는지 참 알 수 없을 만치 귀엽고도 갸륵한 데다가 그래도 '크로씽'에 오면 말뚝에다가 간판을 써서 가로대 '기차에 조심' 그것을 읽은 다음에 나는 S더러 농담으로 그 간판을 사람에서 보이는 쪽에는 '기차게 조심' 그렇게 쓰고 기차에서 보이는 쪽에는 '사람에 조심' 그렇게 따로따로 썼으면 여러 가지 의미로 보아 좋겠다고 그래 보았더니 뜻밖에 S도 찬성하였습니다. S의 그 인생관을 집어넣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은 캡을 쓴 여관 심부름꾼 녀석이 들고 벌써 '플랫폼'에 들어서서 저쪽 기차가 올 쪽을 열심으로 바라보고 섰는지라 시간은 좀 남았는데 혹 그 '갸꾸비끼' 녀석이 그 가방 속에 든 인생관을 건드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얼른 그 가방을 이리 빼앗으려고 얼른 우리도 개찰을 통과하여서 '플랫폼'으로 가는데 여관 '보이'나 '갸꾸비끼'나 호텔 자동차 운전수들은 일 년간 입장권을 한꺼번에 샀는지는 모르지만 함부로 드나드는데 다른 사람은 전송을 하려 '플랫폼'에 들어가자면 입장권을 사야 된다고 역부가 강경하게 막는지라 그럼 입장권은 값이 얼마냐고 그랬더니 십 전이라고 그것 참 비싸다고 그랬더니 역부가 힐끗 십 전이 무엇이 호되어서 그러느냐는 눈으로 그 사람을 보니까 그 사람은 그만 십 전이 아까워서 그 사람의 친한 사람의 전송을 '플랫폼'에서 하는 것만은 중지하는 모양입니다. 장난감 같은 '시그널'이 떨어지더니 갸륵한 기관차가 연기를 제법 펄석펄석 뿜으면서 기적도 쓱 한번 울려 보면서 들어옵니다. 금테를 둘이나 두른 월급을 많이 타는 높은 역장과 금테를 월급을 좀 적게 타는 조역이 나와 섰다가 그 의례히 주고받고 하는 굴렁쇠를 이 얌전하게 생긴 기차도 역시 주고받는지라 하도 어쭙지않아서 S와 나와는 그래도 이 기차를 타기는 타야 하겠지만도 원체 겁도 나고 가엾기도 하여서 몸뚱이가 조곰해지는 것 같아서 간질리우는 것처럼 남 보기에는 좀 쳐다보일 만치 웃었습니다. 종이 울리고 호루라기가 불리고 하는 체는 다 하느라고 기적이 쓱 한 번 울리고 기관차에서 픽- 소리가 났습니다. 기차가 떠납니다. 십 전이 아까워서 '플랫폼'에 들어오지 아니한 맥고자를 쓴 사람이 누구를 향하여 그러는지 쭈굴쭈굴한 한정하지도 못한 손수건을 흔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칙칙푹팍 칙칙푹팍 그러면서 징검다리로도 넉넉한 개천에 놓인 철교를 건너갈 때 같은 데는 제법 흡사하게 기차는 소리를 내일 줄이 아는 것이 아닙니까. |
」 |
注釈
[編集]- ^ 同鉄道には762㎜軌間の路線として、他に咸北線などが存在した。
- ^ a b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5143号, 1944年3月29日
- ^ (宮田2021-1)p.60
- ^ (宮田2021-1)p.62・64
- ^ 朝鮮総督府官報 大正第2054号, 1919年6月16日
- ^ 朝鮮総督府官報 大正第2317号, 1920年5月4日
- ^ 朝鮮総督府官報 大正第2514号, 1920年12月27日
- ^ 朝鮮総督府官報 大正第2782号, 1921年11月19日
- ^ 朝鮮総督府官報 大正第3620号, 1924年9月5日
- ^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1187号, 1930年12月16日
- ^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1492号, 1931年12月26日
- ^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2195号, 1934年5月8日
- ^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3096号, 1937年5月14日
- ^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3106号, 1937年5月26日
- ^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5286号, 1944年9月15日
- ^ 朝鮮総督府官報 昭和第2581号, 1935年8月19日
- ^ 百年の鉄道旅行ー北緯38度線の狀況[1]
- ^ 《月刊 每申》, 1934.8., p.33~35
参考文献
[編集]- 鉄道省 編, 《鉄道停車場一覧 昭和12年10月1日現在》, 川口印刷所出版部, p508~509、1937年。
- 宮田寛之「762mm軌間では世界最大級のミカド形とプレーリー形テンダー機関車(その1)」『鉄道模型趣味2021年1月号(No.948・雑誌コード06455-01)』、株式会社機芸出版社、2021年1月、60-67頁。